일상누림교회
축도에 관하여 본문
이 글은 윤석준(부산 유은교회) 목사님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퍼온 글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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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에 대하여
1) 축도는 '빌 축'자에 '빌 도'자를 쓴다. 그래서 나는 축도에 대해 말할 때 주로 "축 자도 틀렸고 도 자도 틀렸다"라는 식으로 종종 말한다.
왜냐하면 '축'은 '비는 것'인데, 예배의 마지막에 행해지는 이 선언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것'으로서 '비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언어 습관에서 아주 잘못된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라는 식의 표현인데,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축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복을 빌 대상은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는 '축복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주체시므로, 절대로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복 주십니다"라고 말하라.
이런 방식으로 '축'은 잘못됐다. 예배 마지막의 이 의식은 '비는 것'이 아니다. '선포하는' 것이다.
'도'는 '기도'라는 뜻인데, 나는 우리네 예배 예전이 왜 이 정도의 전통도 배우지 못했는지 매우 의아하다. 예전 역사에서 그 어떤 교회사에서도 예배를 마칠 때의 베네딕션을 '기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 우리는 '기도'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심지어 축도를 한다면서 "기도하겠습니다"하는 목사도 간혹 보곤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베네딕션은 기도가 아니다.
모든 시대의 교회가 그렇게 이해했고, 예전적으로 마땅하고 당연한 예배 마지막의 의식은 '강복 선언'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임하실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2) 눈을 뜨는 것과 그리스도의 복 주심: 강복선언을 '기도'라고 여기기 때문에 성도들이 눈을 감기 시작했다. 강복을 하는 목사도 눈을 감는다. 그러면 안 된다. 강복의 선언은 승천하신 주님께 기초하고 있다. 주님의 승천 때 제자들이 하늘을 올려다 보자 천사가 나타나 "왜 하늘을 보고 있느냐"고 하면서, "주께서 올리우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이때 주님의 승천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심의 의미는, 주께서 복을 주시면서(강복) 올라가셨으므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늘에서 계속하여 우리의 중보자로 복 주시고 계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손을 드시고 복 주시며 올라가셨던 그 일을 계속하고 계시다. 목사의 강복은 이것을 '상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말씀을 듣고,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주의 백성들에게 "삼위 하나님의 복 주심이 계속해서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는 것이 예배 마지막의 강복 선언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강복 선언을 통해 '강력한 위로'를 얻게 된다. 세상에서 나 혼자 살게 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다짐이 들려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의 백성들은 목사의 들려 올려진 손을 바라보며 강복 선언에 임해야 한다. 그 목사의 들려올려진 손을 바라보며, 주님의 복 주시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눈을 뜨는 것은 필수적이다.
3) 성경구절을 맘대로 바꾸는 일: 부수적인 것이긴 하지만, 왜 강복의 성경 구절을 제 맘대로 목사가 바꾸는가? 심지어 어떤 목사는 이 복주심을 설명하면서 전국, 온 세계, 온 우주 평화까지 들먹이는 이도 있다. 무지를 폭발시키는 짓이다.
가장 바람직한 강복은 성경 구절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복 주심을 성경 구절 그대로보다 더 잘 말할 수는 없다. 여기 인간의 말을 첨언할수록 그 강복은 초라해지며, 인본적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강복이 거기 서 있는 회중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예배의 상식에 속한다. 온 우주 평화를 들먹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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